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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말할 때 흔히 이로우니 해로우니 하며 이분법적으로 구별하려는 경향이 있다.
다분히 돈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의 편견에 따르는 구별이지 생태적 고려는 아니다. 생태계에 어우러지는 동물은 모두 이로운 법이므로.
사람의 이익에 해를 주지 않더라도 보기에 더럽거나 흉하면 배척하려는 경향도 있다.
외국의 우화나 전래동화에서 의인화한 이야기로 동물을 평가하기도 하며 심지어 텔레비전 해설자의 섣부른 멘트에 따라 편견을 추가하기도 한다.
어려서 생긴 편견은 어른까지 이어진다.

대개의 어른들은 경제나 도구적 가능성을 따져 동물을 평가하고 관리한다.
당장 쓸모없다 싶으면 없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논에 개구리나 뱀이 없어도 문제 삼지 않는다.
귀찮지 않아 좋다고도 말한다.
살충제가 있는 한 수확량에 영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산에 새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문제를 느끼지 않고 하천에 물고기가 보이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홍수방지를 위해 산간계류까지 시멘트 콘크리트로 싸바라는 사람들은 산새가 없어도 목재나 버섯 채취하는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해충과 익충의 구별법에 익숙한 마당이지만 굳이 해로운 동물을 찾자면 그 후보는 이 땅에 귀화된 외래종일 것이다.
제 눈앞에 움직이는 작은 동물들을 닥치는대로 먹어치우는 황소개구리와 붉은귀거북, 안정된 호소 생태계를 싹쓸이하는 배스와 불루길들은 고유 생태계 측면에서 해롭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래종들은 자기가 원해서 이 땅에 들어와 적응하지 않았다.
이 땅의 생태계가 외래종의 생존에 불편하다면 수를 늘일 수 없었을 테지만 기존 동식물로 어우러진 고유 생태계와 전통문화를 허문 사람들이 괜히 퇴치해야 한다며 야단법석이다.

이 땅의 파괴된 생태계에 귀화된 외래종은 의외로 많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저수지에 퍼진 황소개구리를 비롯하여 흔히 미국식으로 배스와 부루길이라 부르는 큰입우럭과 파랑볼우럭, 그리고 이스라엘잉어, 떡붕어, 백연어, 초어, 무지개송어들은 1960년에서 1970년대, 단백질 공급 명분으로 수입하여 내수면에 풀어놓은 외래 동물이다.
양식용으로 도입한 미국산 찬넬메기도 우리 산천에 퍼진 지 오래다.
황소개구리에 놀란 당국은 외래종 도입을 더는 고려하지 않겠지만 생태적 문제는 이미 고착화되고 말았다.
퇴치가 불가능하게 정착된 이제 파괴된 우리 생태계의 일원으로 여겨야할지 모른다.

선박이나 수입곡물 원목에 묻어 무역 부산물로 부주의하게 들어오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는 서식환경이 맞지 않거나 그 유입되는 개체수가 적어 귀화되지 못한다. 그래서 논외로 치고, 최근 문제가 불거지는 외래종 중 애완동물이 자연에 퍼져나간 경우도 있다.
녹색이구아나와 같은 열대성 애완동물의 수입이 최근 부쩍 늘었지만, 우리 생태환경에 적응이 불가능하므로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붉은귀거북은 사정이 다르다.
졸라대는 아이들 등쌀로 기르다 덩치가 커져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하천이나 연못에 슬쩍 풀어놓았고, 고유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독점하고 있다

생태계의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벌레가 있다고 숲에 살충제를 뿌리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사슴을 잡아먹는다 해서 늑대를 쏘아 죽인 미국 옐로스톤파크의 후회스런 사례도 있다.
살충제를 뿌리면 의도했던 벌레만 죽지 않는다.
그 범위에 있는 대부분의 동물이 치명적으로 사라진다.
먹이그물에 따라 보전하려는 생태계 상위 동물도 연쇄적으로 사라진다.
늑대를 죽이자 일시적으로 늘어난 사슴들이 멸종했다.
동물이 없는 숲은 건강을 잃고 단순해지고 만다.

“한 마리에 천원요 천원!, 올챙이는 오백원!” 황소개구리 섬멸작전을 진두지휘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내세운 구호다.
대형 천막과 현수막으로 장식한 떠들썩한 현장에서 바삐 돌던 방송 카메라가 물러서고, 한 말씀 마친 고관대작과 동원된 공무원들이 횡하고 떠나자 이내 시들해지는 이벤트, 가마니 가득 잡은 황소개구리의 수매자금이 동나자 철 지난 해수욕장처럼 썰렁해진 그 지역의 황소개구리는 지금 이 시간, 사라지지 않았다.
돈을 목적으로 들여와 돈으로 퇴치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외래동물은 생태계 복원으로 조절이 가능할 텐데, 얼마 전, 무소불위의 황소개구리가 임자 만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의 토종인 두꺼비다.
두꺼비가 죽은 황소개구리를 끌어안은 모습이 발견된 것인데, 두꺼비는 황소개구리의 천적일까.
두 종이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확실하지 않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두꺼비 피부 독성에 내성이 없는 황소개구리가 두꺼비 번식지에 철모르고 들어갔다가 호되게 당했을 뿐일 것이다.
초여름 소택지에 번식하는 황소개구리가 기상이변으로 뜨거워진 봄날 두꺼비 산란장을 기웃거리다 봉변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황소개구리가 없던 이 땅에 황소개구리 천적은 따로 없지만 모나면 정 맞는 법! 백로와 왜가리들이 황소개구리 올챙이를 생태적으로 조절해주고 있다고 한다.
하기야, 백로와 왜가리들도 먹을 게 드물어져 하는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천만다행이긴 한데, 백로와 왜가리의 천적이 준동할까 은근히 걱정이다.
바로 사람이다.
파출소에 영치해야하는 기준 이하로 구경을 개조한 공기총 부대의 극성으로 사람만 보면 날아오르기 바쁘기 때문이다.
외래동물 퇴치를 말하기 앞서 우리네 마음속에 잠자고 있는 조상의 생태사상을 깨우는 일이 급선무가 아닐까 싶다.

높은 현상금으로 외래종의 퇴치가 가능할까. 두꺼비가 웃겠다.
가공 산업으로 유혹하면? 자칫 불법 양식이 성행할까 겁난다.
외래종이라도 우리 생태계에 정착한 이상, 인위적 조절은 어렵다. 생태계 질서에 맡겨야 한다.
고유 생태계를 복원하여 외래종의 서식환경을 제거하여 외래종이 위축되도록 유도해야 자연스럽다.
뜻하지 않은 문제를 피할 수 있다.

이제 생태계 복원뿐 아니라 모든 교과서에 생태를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전통문화와 고유 생태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개편해야 한다.
눈앞의 경제적 이익으로 동물의 가치를 재단하고 관리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다양성이 보전된 생태계에서 후손의 마음도 몸 이상 건강하기 때문이다. 

 

(물푸레골, 2004년 11월 인천도시생태 환경연구소 환경학자 박병상 박사)